제인병원 병원장 김길우(02, 3408~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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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12 라디오 동의보감 방송분)


안녕하십니까? 원대학교 한방산업학부 교수 김길우입니다.


영조 50년 서기 1774년 갑오년 음력 815진전으로 가서 참배하다가 곽란기가 있다라는 기사에는,‘임금께서 진전(眞殿)으로 가서 참배하니, 왕세손(王世孫)이 어가(御駕)를 수행하였다. 어가가 돌아올 때 육상궁(毓祥宮)으로 가려고 송현(松峴)에 이르자 임금께서 갑자기 곽란기가 있어서 가래침을 토()하는지라, 건공탕(建功湯)을 올리니 곧 멈추어졌다. 왕세손이 연()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뛰어가서는 보여(步輿)를 타고 곁을 떠나지 않으며 성의를 다해 부축하고 간호하면서 바로 대궐로 돌아가기를 청하였는데, 왕세손의 정성과 효심이 창황하고 갑작스러운 순간에도 더욱 돋보이니, 배종하는 여러 신하들은 물론 군졸과 가마꾼에 이르기까지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도승지가 승정원에서 숙직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영조께서 곽란기가 있어 난리가 났었는데 효성스러운 정조가 곁을 지켰다는 내용입니다. 늘 실록을 보면서 놀라운 것은 왕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과 한 나라 군주의 건강정보가 이토록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 왕권의 영조도 피해가지 못 했던 곽란이 오늘 말씀드릴 내용입니다.

영조와 효심 깊은 정조


동의보감에서는 곽란(霍亂)의 원인에 대하여,‘한의학의 경전인 내경(內經),“세상에 토기(土氣)가 뭉(鬱結)쳤다가 펼쳐지면 사람들은 구토(嘔吐)와 심하게 토하고 설사하는 곽란 그리고 설사를 앓게 된다고 하였다. ,“세상에 태음이란 기운이 이르는 때에는 사람들이 속이 빵빵하거나 곽란으로 토하고 설사하는 병에 걸린다고 하였다. ,“토기가 부족(不及)한 해에는 바람이 크게 불어서 사람들이 소화도 안 된 상태로 설사하는 손설(飱泄)이나 곽란이란 병이 생기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우며, 복통(腹痛)과 더불어 근골(筋骨)이 떨리면서 오그라드는 병이 돈다고 하였다. 곽란이란 병은 모두 음식으로 생기지 귀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속에 덩어리인 적()이 있는데다 외부의 사기(外邪)를 받아 양기(陽氣)가 오르지 못하고 음()이 내려가지 못해 흉격(胸膈)이 막혀서 생기는 것이므로, 귀신 때문이 아니라 전부 음식 때문이라는 것이 옛날의 현명한 의사들의 확실한 결론이다라고, 곽란의 기전과 세상의 기운간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해놓았습니다.

 

계속해서 보감에서는,‘곽란이란 것은 바람이 한 번 불면 바로 풀잎들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변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揮藿變亂). 사람들이 평소 속에 열이 뭉쳐있었는데 밖에서 추운 한기(寒氣)를 받으면 일시(一時)에 음양이 뒤섞인다. 그래서 이병의 근본(根本)은 음식을 적절하게 먹지 않아 날것이나 찬 것을 과하게 먹어서 속에 습열(濕熱)이 심해져 소화기인 중초(中焦)가 운행하지 못하고 그 기운이 제대로 승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로 토하고 아래로 설사하는 것이다. 곽란은 간혹 음식 때문이거나, 추운 한기를 받거나, 너무 배고프거나, 심하게 화를 내거나, 배나 수레를 타서 멀미로 위기(胃氣)를 상해서 환자가 구토와 설사가 함께 생기는 것으로, 약을 너무 늦게 쓰면 순식간에 치료할 수도 없게 된다. 곽란은 대부분 열이 원인이니 여름과 가을에 많이 생기고, 또 곽란은 풍더위()의 세 가지 기()가 모여서 생긴다. 바람이라는 것은 간의 목기이고, 습이라는 것은 비장의 토기이며, 더위라는 것은 심장의 화기이다. 간은 근육을 주관하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면 근육이 뒤틀리고, ()하는 것은 더위 때문인데 심장의 화기(火氣)가 위로 타오르기 때문에 구토하는 것이다. 설사하는 것은 비장의 토기 때문이니, 비장의 습기가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설사하는 것이다. 당나라의 의가 계현자(啓玄子),“모두가 비장의 열(脾熱)로 생긴다고 했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라며, 곽란의 어원(語源)과 몸속의 기전(機轉) 그리고 병기(病機)를 상세히 설명해놓았습니다.

곽란은 너무 괴로워~


선조도 곽란으로 고생을 한 것 같습니다. 선조 35년 서기 1602년 음력 1111일 기사에는,‘ 42점에 차비문(差備門)에서 바로 내의원에 전교하여 어의(御醫)를 급히 불러 평상복으로 들어와 진찰하게 하였다. 임금이 곽란증으로 구토를 하고 설사를 하여서 옥후가 현란하고 맥박이 빠르다고 했다. 입직 승지 권협(權悏)이 급히 내의원으로 가서 전의관(典醫官)과 증세를 상의하여 위령탕(胃苓湯)을 조제해 올렸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병이 벼슬을 가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음시간에도 곽란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하겠습니다.

 

제인한방병원 병원장 김길우 (02, 3408-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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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당선생 김길우(혁) 2017.07.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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