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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해서 남주자!/MBC(라디오 동의보감)

성종과 노사신의 동병상련(同病相憐), 장풍 장독(11.10.21 방송분)

by 김길우(혁) 2020. 10. 21.

제인병원 병원장 김길우(02, 3408~2132)

김길우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213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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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1 라디오 동의보감 방송분)


편안하십니까? 중원대학교 한방산업학부 교수 김길우입니다.

성종(成宗)실록에는 1476년 서거정(徐居正) 등과 함께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와 동문선(東文選)을 편찬한 문신 노사신(盧思愼)에 관한 기사가 있습니다. 성종 7년인 서기 1476년 병신(丙申)년 음력 1월 27일 임신(壬申)일‘노사신 대신 서거정을 원접사로 삼고 임원준을 평양 선위사로 삼다’라는 기사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노사신이 와서 아뢰기를,“신(臣)은 그전부터 치질(痔疾)을 앓고 있는데, 중도(中途)에서 다시 발생할까 염려됩니다.”하니, 임금께서 전교(傳敎)하기를, “과연 치질을 앓고 있다면 될 수가 없다. 윤 정승(尹政丞)이 여러 번 그 임무를 겪었으니 지금 또 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하니, 원상(院相) 등이 아뢰기를,“정승(政丞)을 원접사(遠接使)로 삼는 것은 옛날의 예(例)가 아닙니다. 벼슬이 2품에 이른 사람이면 될 것이며, 또 사신(使臣)이 만약 시(詩)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창화(唱和)해야만 할 것이니, 서거정(徐居正)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였다. 임금이 말씀하기를,“만약 그대들이 시(詩)를 잘한다면 종사관(從事官)은 갈 필요가 없다.”하고는, 이에 서거정(徐居正)을 원접사(遠接使)로 삼고, 임원준(任元濬)을 서거정을 대신하여 평양 선위사(平壤宣慰使)로 삼았다’라는, 내용입니다. 국가의 대사를 치루는 정승이 치질 때문에 곤란하다고 보고하는 대목에서 성종이 웃었는지 울었는지 참 궁금한 대목입니다. 오늘도 대변과 피가 함께 나오는 장풍과 장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혈변보는 모기! 그만 먹어!!!

동의보감에서는,‘장풍(腸風)과 장독(腸毒)은 바로 혈치(血痔)를 말하는 것이고, 장벽(腸澼)은 대변과 피가 함께 나오는 것인데 장풍이나 장독을 말하는 것이다. 새빨간 맑은 피가 나오는 것이 장풍이고, 검붉고 탁한 피가 나오는 것이 장독이다. 장풍은 사기(邪氣)가 밖에서 들어오면서 바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피가 새빨갛고 맑으며, 장독은 열독(熱毒)이 오랫동안 쌓여 있다가 비로소 나오는 것이므로 피가 검붉고 탁하다. 장풍을 치료할 때는 풍(風)을 흩어버리고 습(濕)을 순환시켜야 하며, 장독을 치료할 때는 열(熱)을 내리고 맑히며 피를 식혀 서늘하게 해야 한다. 장풍의 하혈은 반드시 대변이 나오기 전에 나오므로 가까운 곳에서 출혈됐다는 뜻의 근혈(近血)이라고 부르고, 피의 색은 맑고 선명하며, 패독산(敗毒散)으로 치료한다. 장독의 하혈은 대변이 나온 뒤에 나오므로 먼 곳에서 출혈됐다는 뜻의 원혈(遠血)이라고 부르고, 피의 색은 검고 탁하며, 향련환(香連丸)으로 치료한다.’라고, 장풍과 장독의 증상을 구별하고 그 치료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색이 선명하면 근혈입니다.

계속해서 보감에서는,‘장(腸)이 차가워 하혈하면 통증이 없는데 생강(生薑) 육계(肉桂) 같은 약재 써야하고, 열이 쌓여서 하혈하면 순전히 새빨간 피가 나오는데 심하면 통증이 있으며 삼황탕(三黃湯)으로 치료한다. 대변으로 하혈하는 것을 장풍이라고 부르는데 절대로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 그 증상의 본말(本末)을 살펴 먼저 겉으로 들어나는 표증(表證)을 없애고 그 후에 속의 이증(裏證)을 공격하여 치료하면 그 출혈은 저절로 치료된다. 맥(脈)이 큰 홍대(洪大)맥이 나오면 사물탕(四物湯)과 황련해독탕(黃連解毒湯)을 합방하여 치료한다. 대변이 나온 뒤에 하혈하고 뱃속이 아프지 않은 것을 습독하혈(濕毒下血)이라고 하는데 주로 황련탕(黃連湯)으로 치료하며, 뱃속이 아픈 것을 열독하혈(熱毒下血)이라고 하는데 작약황련탕(芍藥黃連湯)을 주로 처방한다. 장벽은 물을 내 뿜듯 대변과 피가 따로따로 쏟아져 나오는 것인데, 장마철인 장하(長夏)에는 습열(濕熱)이 심하여 객기(客氣)가 왕성하고 주기(主氣)가 약한 때이므로 장벽이 심한 것으로써 당연히 양혈지황탕(凉血地黃湯) 등을 처방한다.’라며, 치료 처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종의 묘, 선릉의 모습입니다. 임금님도 사람인지라...

성종 20년 서기 1489년인 기유(己酉)년 음력 2월 12일 경자(庚子)일에는‘임금께서 치질 등 때문에 경연을 취소하다’라는 기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내가 사헌부(司憲府)의 말에 따라 경연(經筵)에 나가고 조회를 보려고 하였으나, 다만 치질(痔疾)과 이질(痢疾)이 함께 일어나서 실행하지 못한다.”고 하였다.’하하~ 성종도 치질을 앓게 된 것입니다. 당시 임금과 신하는 동병상련(同病相憐)했을까요?

다음시간에도 치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인한방병원 병원장 김길우 (☎02,3408-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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