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읽어서 남주자

<철학, 역사를 만나다>를 읽고...(11.03.29)

by 김길우(혁) 2020. 3. 29.

2011 한약학개론 첫 번째 과제는 철학에 관한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철학을 접해보지 못하다가 이번 기회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모처럼 깊이 있는 사색도 해보고, 관련된 다른 서적들을 스스로 찾아 읽어보는 학생들을 보고 대견했습니다. 모범이 되는 글 한 편을 소개합니다. 이보희 학생의 글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책도 읽고...대견한 우리 학생들...)

<철학, 역사를 만나다>를 읽고

 

한방산업학부 대학원생 이 보 희

보통 ‘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고 재미없고 딱딱한 이론들로 가득하고 현실과는 거리감이 먼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대의 철학자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한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가장 현실적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철학과 역사를 따로 놓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철학을 역사와 접목시켜 설명하여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어 흔히 말하는 어려운 철학적 이론들도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

플라톤의 국가론, 우리가 몰랐던 십자군 전쟁의 추악한 이면, 공자의 유교가 어떻게 중국의 대표적인 철학사상이 되었는지에 대해 마치 소설책을 읽는 듯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백성들을 강인한 군인으로 만들었던 스파르타를 소크라테스나 그의 제자인 플라톤의 타락을 멀리하고 금욕주의로 이뤄진 이상적인 국가라고 칭송하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개인의 감정이나 행복보다 국가를 중시하면서 극단적으로는 약간은 공격성이 강하고 야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스파르타와 예술과 문화, 앞선 민주주의 정치를 선도했던 아테네와 아테네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은 왠지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살고 있던 시절의 아테네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부패한 나라였다. 다수결로 죄의 유무를 가리던 아테네 법정의 재판관은 법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로 채워졌고, 모든 성인 남자가 참여하는 민회(아테네의 시민 기구)에서는 조금이라도 고통과 인내가 필요한 정책은 반대했다. 또한 미래상을 제시하는 정치가보다 사탕발림과 화려한 말솜씨로 대중을 속이는 사람들이 더 인정받는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애국심에 불타는 일부 엘리트들의 눈에는 아테네는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사회로 보였다. 비록 적이기는 했지만 체계적인 교육으로 절제와 금욕을 익힌 시민을 길러 내는 스파르타는 이들에게 '개혁 모범 답안' 그 자체였다. 뛰어난 학식으로 귀족 청년들을 몰고 다니던 소크라테스는 평생 아테네의 천민적 민주주의를 혐오했고,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를 은근히 찬양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테네의 쇠락과 부패를 직접 목격한 플라톤이 '국가'에서 그린 이상 사회는 왠지 스파르타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스파르타 인들의 생활에서는 겸손과 예절이 강조되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어른에게 복종하며, 늘 침묵하고 '핵심만 찔러 간략하게 말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연설이 출세의 기술이었던 아테네와는 달리, 스파르타 인들은 말 많은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이상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백성들의 수보다 노예들이 수가 많아 이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백성들을 강압적인 정치로 억압하고 하나의 거대한 군인국가로 만들었지만 겨우 무지를 모면하는 수준의 지식만을 가르치고 농사와 군사를 키우는 것에 중시했던 결과 그리스를 정복한 뒤 그리스로 흘러들어갔던 많은 양의 재물이 유입된 것이 통제가 되지 않고 내부의 혼란을 가져왔다. 타락을 멀리하고 철저한 금욕주의로 빈곤한 국가에서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예술과 문화, 지식이 부족했던 결과 스파르타는 후세에 남길만한 업적도 없이 ‘스파르타’라는 이름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를 통해 아무리 강압적인 규칙과 규율을 강요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단기간에는 빠른 성과를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동체를 이루며 살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스파르타와 이러한 스파르타는 탐욕에 가득 찬 시민들이 지극히 이기적인 주장만을 내뱉고 사는 아테네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국민 전체가 탐욕이 없고 검소하며 개인보다 전체를 중시하는 사상이 주변국가인 아테네를 장악하는 데 큰 발판이 되었지만 얕은 지식과 개인의 의사를 짓밟는 강압적인 정치를 행사했던 스파르타와 문화와 예술, 철학이 꽃피웠지만 왜곡된 민주주의와 타락한 정치인들과 탐욕으로 가득 차 결국은 스파르타에 패한 아테네 두 국가의 사상을 보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해로운 점인지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맹목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수고하셨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