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입니다)

한약학 개론을 듣는 학생들이 첫 번째 과제를 하면서 철학을 꽤나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생소하거나 어려운 개념도 우선 접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두 번째 과제는 동양철학사에 대한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맞춤법을 자주 틀리는 것은 주의를 좀 더 주어야 되겠지만, 어린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점이 고무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전주희 학생의 감상문입니다.

한권으로 읽는 한국철학 (황광욱, 정성식, 임선영 지음)

2010102042 전주희

동양철학사를 막상 쓰려고 하니 어떤 주제를 삼아야 될지 잘 몰랐다. 그런데 도서관에 가지마자 보이는 책이 바로 이 책이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철학자들을 한명씩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책 이였다. 이 부분에서 내가 제일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이 바로 성리학을 다룬 율곡이이와 퇴계이황 이였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이미 중학교때부터 알고 있던 분들 이였는데 솔직히 잘 몰랐는데 이번기회를 통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성리학은 ‘심성의리지학’의 줄임말로, 주된 관심은 마음과 본성, 옳음과 이치라고 한다. 그런데 마음의 핵심이 본성이고, 옳음의 근원은 이치에 있기 때문에 ‘심성의리’는 ‘성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성과 리에는 각기 대응되는 개념이 있는데 성과 정, 리와 기가 그것이다.

리와 기를 본체론적인 입장에서 구분하면, 리는 형체를 갖지 않는 형이상이며,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라고 하면, 기는 형상을 갖춘 형이하 이면서 드러난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의 심성과 관련해 구분하면 리는 천리로서 인간에게 부여된 본성이고, 기는 인간의 생체적 욕구와 욕망인 인욕이라고 한다.

성리학은 역사도 깊고 내가 배우기에 양이 너무 많이 벅차다. 또 성리학에 관련된 인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그 이론의 갈래에 따라 해석이나 주장도 다양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성리학은 주희의 성리학을 근거로 했다. 왜냐하면 성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 바로 주희고, 조선에서도 주희의 성리학이 다른 사상과 이론투쟁을 벌이며 전통사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성리학에서 리와 기의 관계를 자세히 알아보면 어떤 측면에서는 필연적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필연적이지 않은 모순된 면이 있다. 이 같은 모순이 발생하게 된 시초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에게 있다고 한다. 주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세계를 리와 기라는 두 틀을 가지고 해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엄격하게 말하면 ‘옳다, 그르다’고 하는 가치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라고 한다. 자연을 설명하는 데는 모순이 없지만, 인간의 성을 문제 삼을 때 그 성의 근원을 리에 두고 최고의 선이라고 하는데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동양사상의 초고의 지향점은 ‘하늘과 사람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 는 명제이기 때문에 주희는 이 천인합일을 리와 기로서 해명하려 했고, 그러다 보니 리에 원리와 표준이라는 두 의미를 동시에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황에게 있어 가장 큰 앎의 대상은 ‘인간’이었다. 인간이 어떤 원리로 태어나는가, 인간과 만물은 무엇 때문에 구별되는가,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 인간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이황의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이는 온 세상이 오직 이익만을 쫓고, 사람답게 산다는 말은 배부른 자의 한가한 소리나 현실과 동떨어진 자의 공허한 구호처럼 여겼다.

이황은 성리학을 전통으로 여겨 불교, 도교와 양명학을 힘써 배척한 반면에 이이는 한때 절에 들어가 불교 공부도 하고 노자의 도덕경을 해설한 책을 쓰기도 하는 등 성리학 이외의 학문에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다. 또, 이황이 인간 본연의 도덕성을 함양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면, 이이는 세상을 바르게 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두 사람의 이론을 번갈아 가면서 읽을 때는 좀 복잡하고 해깔리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둘 다 이기론을 주장하였지만 관점의 차이인 것 같다. 이이는 이기일원론으로 기를 조절하라 하였고, 이황은 이기이원론을 주장하여 이와 기가 서로 다르다고 하였다. 복잡하지만 이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방학때 시간이 많이 남으면 다른 부분을 더 공부해야겠다.

 

방학 때 시간이 많이 남으면 더 공부하겠다 말,
꼭 기억하겠습니다~

'放學'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by 유당선생 김길우(혁) 2019.04.01 00:14
  • 지성의 전당 2018.09.20 21:24 신고 ADDR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철학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