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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재모아 남주자!/사람을 살리는 신의 선물

말 대신 사인(砂仁)!(12.09.15 방송분)

by 김길우(혁) 2020. 9. 15.

제인병원 병원장 김길우(02, 3408~2132)

김길우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213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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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5 라디오 동의보감 방송분입니다)

 

 

건강하십니까? 중원대학교 한방산업학부 교수 김길우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말(馬)값만큼 귀했던 사인(砂仁)입니다!

 

태종 1년 서기 1401년 신사년 음력(陰曆) 91일 정해(丁亥)일에는 조선의 말 1만필을 무역하겠다는 명나라 임금의 뜻이 담긴 병부(兵部)의 자문(咨文)에 관한 기사가 실려있습니다.‘조선국에 마필(馬匹)이 많이 산출되어 전일에 국왕이 좋은 생각으로 말 3천 필을 바치었는데, 이미 요동 도사(遼東都司)에 명하여 관군에게 주어서 타게 하였다. 지금 다시 전쟁에 싸울 수 있는 약간의 말을 쓰려고 하여, 사람을 시켜 단필(段匹포초(布綃약재(藥材)를 운반하고, 태복시 소경 축맹헌(祝孟獻)과 예부 주사(禮部主事) 육옹(陸顒)을 시켜 좋은 말 1만 필을 바꾸게 하였으니, 너희 병부(兵部)는 문서를 보내어 국왕의 관사관(管事官)에게 일러서, 매양 관민(官民)의 말 있는 집에 알리게 하여, 그곳의 시가(時價)에 의하여 바꾸어 오되, 저들에게 결손이 없게 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본부(本部)에서 이제 성지(聖旨)의 사의(事意)대로 갖추 일러 보내고 이자(移咨)하여 알리는 바이니, 준행(遵行)하여 시행하라. 1만필을 바꾸기 위한 단필(段匹) 등물(等物)과 각색(各色) 저사(苧絲생초(生綃면포(緜布)와 약재(藥材)로는 사인(砂仁) 목향(木香) 정향 황련(黃蓮) 단사(丹砂) 담반(澹礬) 천궁 육두구(肉豆蔲) 양강(良薑) 백화사(白花蛇)를 운반하여 보낸다라는 내용입니다. 쉽게 말해 말의 가격으로 조선에는 귀한 사인과 같은 약재와 면포 등의 생필품으로 결재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당시에 말 값으로 보내졌던 사인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사인이 한약재로는 이런 모양입니다.

 

동의보감에서는,‘양춘사를 축사밀(縮砂蜜)이라고 하는데,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매우며 독이 없다. 일체(一切)의 기병(氣病)과 명치가 아픈 심복통(心腹痛), 소화불량과 설사(泄瀉), 곱이나 피고름이 섞인 이질인 적백리(赤白痢)를 치료한다. 비위(脾胃)를 따뜻하게 해주고, 유산징후인 태동(胎動)으로 인한 통증을 멎게 하며, 위로는 토()하고 밑으로는 설사하는 곽란(霍亂)을 치료한다라며, 사인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장을 따뜻하게 해서 음식을 소화시키는 효능이!

 

계속해서 보감에서는,‘사인의 모양은 백두구(白荳蔲)와 비슷하면서 약간 검은 편이고, 익지인(益智仁)이라는 약재와도 비슷하다. 음력 7~8월에 딴다. 백두구를 주된 약을 보조하는 사약(使藥)으로 쓰면 폐()로 들어가서 작용하고, 인삼(人蔘)이나 익지인을 사약으로 쓰면 비장(脾臟)으로 들어가서 작용한다. 황백(黃柏)이나 복령(茯苓)을 사약으로 쓰면 신장(腎臟)으로 들어가서 작용하고, 적석지(赤石脂) 백석지(白石脂)를 사약(使藥)으로 쓰면 대소장으로 들어가서 작용한다. 또 다른 이름으로 사인이라고도 하는데,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에 들어간다. 약한 불로 향()이 날 정도로 볶고 주물러서 껍질을 없앤 후에 종자를 짓찧어 부숴 쓴다라고, 사인의 모양을 설명하면서 그 활용법도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특히 동의보감 위병의 단방약부분에서는,‘사인은 위장을 따뜻하게 해서 음식을 소화시키는데, 달여 먹거나 가루로 내서 먹어도 모두 좋다라고, 사인의 효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호탕의 재료를 볼까요? 백단향, 오매육, 초과 그리고 사인!

 

사신으로 조선에 왔던 일본인들도 사인이 들어간 제호탕(醍醐湯)을 마시고는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효종 때 통신사로 일본에 간 남용익이 마중 나온 일본 관리에게 제호탕을 선물하니“13년 만에 조선의 별미를 다시 맛보게 되었다며 좋아했다고 남용익이 쓴 부상일록(扶桑日錄)에 적혀 있다고, 지나간 기사(동아닷컴)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십시오.

 

제인한방병원 병원장 김길우 (☎02,3408-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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