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승닮아 남주자!/정언수 선생님

나만 아는, 노자 도덕경; 10장(21.02.28).

by 김길우(혁) 2021. 1. 20.

도덕경 10장.

9장은 실제에 대한 경계의 말이었고, 10장은 섭리에 대한 현묘한 이치를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실을 재(載)자는 두 가지 동작을 동시에 나타내는 문자로 ‘~하면서,’라는 의미를 가진 글자다.

재영백포일(載營魄抱一) 능무리호(能無離乎),
정신이나 마음을 하나의 신념으로 지키면서, , 섭리를 떼놓을 수 있겠는가?

◆최씨= 혼과 백을 고서 하나로 안아, 분리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글자 하나하나를 해석하려면 하루종일 해야하니까 간단히 설명하면 사람의 정신이나 마음은 비물질적인 것이므로 이론에 속하고, 사람의 정신이나 마음은 물질적인 것이므로 실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철학은 인간의 삶이나 세상 등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론 모든 철학이 인생관이나 세계관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철학은 정신이나 마음에 근거를 두고 그 원리를 지식으로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데카르트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철학은 어떤 경우라도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공감도가 높아야 합당한 학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논리를 신념으로 지키는 철학자들이 글자도 모르고, 뜻도 몰라서 횡설수설해서야 되겠는가? 이제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철학의 정신에 걸맞게 노자가 말한 도덕경의 내용을다시 되짚어봐야만 한다.

전기치유(專氣致柔) 능영아호(能嬰兒乎),
오로지 기운을 부드럽게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할 수 있겠는가?

◆최씨= 기를 집중하여 몸을 부드럽게 하기를, 어린애처럼 할 수 있는가?

◉무(無)자만 없으면 비슷하기 때문에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모든 것이 처음 대하는 특별하고 새로운 것들이지만, 어떠한 관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순수하고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굳어져 가는 것처럼, 우리는 이미 몸이 굳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학습한 관념에 의해

★비유하자면, 호랑이와 싸울 정도로 덩치가 큰 소도 작은 말뚝에 줄을 묶어놓으면 비를 맞으면서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소가 어릴 때부터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커서도 뽑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땅이 물러 말뚝을 뽑고 집으로 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는 들판에 서서 비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도 현실과 동떨어진 학습을 하면 잘못된 관념을 갖게 된다. 그래서 몸은 늙어도 생각은 어린아이처럼 부드러워지려고 노력해야한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딱딱하기 때문이다.

척제현람(滌除玄覽) 능무자호(能無疵乎),
깨끗이 씻어 사물의 참모습을 보면서, 섭리를 결점이라 할 수 있겠는가?

◆최씨= 우주를 비우는 마음의 거울을 닦기를, 아무 흠도 남아 있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말은 유리창이 더러우면 사물이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유리창을 깨끗이 닦으면 사물이 자세히 보이는 것과 같다. 또 사회에서도 부정한 사기꾼들이, 옳고 정당한 사람들보다 더 잘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현상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진짜와 가짜가 가려지고,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던 것들이 밝혀져 공로와 과실에 대한 상(賞)과 벌(罰)이 내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물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섭리이기 때문이다.

애민치국(愛民治國) 능무지호(能無知呼),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면서, 섭리를 알리고 말할 수 있겠는가?

◆최씨=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무위자연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가?

◉ 글자도 모르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이 말은 한마디로 정부의 정책을 사실대로 공개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또는, 조직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를 꼬집는 말이기도 하다.

★전문용어는 주로 특수한 집단에서 쓰이는 용어를 말하는데 한마디로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고 자신들만 아는 학술어다. 그래서 의학, 법률, 경제학, 심리학, 금융 분야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문용어는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거나 특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일반인들이 알면 안 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도덕경 해석자들도 글자나 용어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말을 어렵게 하거나, 또는 특정분야의 전문지식을 일상의 지식으로 바꾸어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전문지식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다는 증거다.

천문개합(天門開闔) 능무자호(能無雌乎),
하늘의 문을 열고 닫으면서, 섭리를 약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최씨= 감관을 통해 외부와 관계를 맺음에, 암컷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

◆김씨= 천문을 여자의 성기로 보고, ‘성기가 열리면 음순과 클리토리스가 빡빡해지고 입술사이가 벌어지며, 반대로 성기가 닫히면 항체의 기능이 떨어진다.’ 는 미친 소리를 했다.

◉도가(道家)에서는 천문을 ‘마음’이라고 하는데, 마음이건 천문이건, 열고 닫기 위해서는 자연의 이치를 바라보는 객관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이치는 강했던 것들은 약해지고, 약했던 것들은 강해지는 것이 순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현실이 바뀐다. 이러한 자연의 순환은 황제의 그림으로 움직임을 살피고 구분하는 것이니, 어찌 황제의 그림을 알면 자연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이치에 통달하면 100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명백사달(明白四達) 능무위호(能無爲乎),
명백하게 사방으로 통하게 하면서, 섭리대로 할 수 있겠는가?

◆최씨=사방세계를 밝게 이해함에 있어, 무지의 태도로 할 수 있는가?

◉글자도 무시하고, 자신의 개념대로 소설을 쓰고 있다. 이 말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것처럼, 확실하게 알고 있어도 다시 한 번 고려해 보라는 것이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고 했다. 더구나 자세히 모를 때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질문하고, 확인해보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메주를 만들려면 최소한 콩으로 만드는지 팥으로 만드는지 알아야 하는 것처럼, 도덕경에서도 그럴듯한 사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제는 조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어떤 것을 배우기 전에, 과연 그것이 확실한 것인지 철저하게 분석해야한다. 만약 어떤 것에 입문했는데 가짜일 수도 있고, 또는 어떤 것을 다 배우고 나자 그것이 가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지축지(生之畜之) 생이불유(生而不有) 위이불시(爲而不侍) 시위현덕(是謂玄德) 장이부재(長而不宰),
돕는 것도 믿지않으며 낳고 기르는 것(동물)들은, 낳아도 소유하지 않고, 뛰어나도 주관하지 않으니, 이를 천지의 현묘한 이치라고 한다.

◆최씨=해석을 아예 하지 않았다.

◉ 이 말을 하나씩 설명하면... 자식은 낳거나 기른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니 함부로 간섭하지마라. 도와주되 스스로 의문을 갖도록 해줘야 창의력을 가질 수 있다. 소상공인과 근로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똑똑한 정부관리가 책상에서 시장을 주관하면 고용문제가 심각해진다. 경제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현묘한 이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동물들은 섭리를 배우지 않아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지만, 사람들은 섭리를 배우지 않으면 자연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

 

★ 10장 전문.

정신이나 마음을 하나의 신념으로 지키면서, 섭리를 떼놓을 수 있겠는가?

오로지 기운을 부드럽게 하면서, 어린애처럼 할 수 있겠는가?

깨끗이 씻어 사물의 참모습을 보면서, 섭리를 결점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면서, 섭리를 알리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늘의 문을 열고 닫으면서, 섭리를 약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명백하게 사방으로 통하게 하면서, 섭리대로 할 수 있겠는가?

 

☉ 낳고 기르는 것(동물)들은, 낳아도 소유하지 않고, 돕는 것도 믿지 않으며, 뛰어나도 주관하지 않으니, 이를 천지의 현묘한 이치라고 한다.

◉ 즉 천지(天地)는 불인(不仁)해서, 착한 사람도 병을 얻고 고통을 받으니, 자연의 섭리에 따르라는 노자의 호된 채찍이고 경고인 것이다. 이처럼 노자의 도(道)는 간단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깊고 무궁무진하다. 마치 물속에 녹아 있는 소금의 존재는 볼 수 없지만, 그 맛을 통해서 소금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과 같아서, 사실 핵심만 파악하고 있으면 상황에 따라 해결 방법을 자유자재로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의 참된 진리는, 천지(天地)로부터 나오고, 법칙은 서로 통하기 때문에, 문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도덕경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글자대로 사실을 직시하고, 낡은 사고와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해도 어떤 것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과실은 본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무(無:없다)라는 한 글자를 이해하지 못해서 엉터리가 된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