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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닮아 남주자!/정언수 선생님

나만 아는, 노자 도덕경; 4장(21.01.17).

by 김길우(혁) 2021. 1. 30.

도덕경 제4장

노자는 1장은 만물을 다스리는 도(道:이치)에 대한 설명이었고, 2장은 그 도(道)를 가지고 사기꾼을 구분하는 법이며, 3장에서는 ‘섭리를 알려서, 사기꾼들이 하려는 것을 못하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도(道)의 개념 부터 철저하게 이해를 해야 된다.

★沖和= 부드럽고 조화함. 沖和之氣=하늘과 땅 사이의 조화된 기운.

☯ 도(道)란, 추상적인 것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이치나 방법이고, 또 어떤 것을 알아내려는 이론과 실제이지, 사물을 바꾸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 빌, 화할, 찌를 충(沖)은 깊다는 뜻이다.

도충(道沖) 이용지혹불영(而用之或不盈),
도(道)는 심원하지만, 실제로 쓰거나 혹은 채우지 못한다.
而=접속사. 用之=실제로 쓰다.

영(盈): 찰, 꽉차다. 사람들은 충(沖)을 비어있다는 관념에서, 허공에 담을 수 있는 것이 도(道)의 쓰임새라고 하거나, 세상이나 만물을 만든다는 우주론에 빗대어서 블랙홀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최씨= “도(道)는 텅 비어있다. 그러나 그 작용은 끝이 없다.” 면서 그 이유를 '공자는 仁으로, 맹자는 四端으로 본질을 확충하고 긍정하기 때문에 채우는 수밖에 없지만, 노자는 비본질주의자이며 유무(有無)의 관계론자로써, 도(道)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은 본질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작용을 하는 본질이 없기 때문에 끝도 없고 목적도 없다.'고 했다.

★ 그런데 비어있거나 모호한 것, 또 보이지 않거나 없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 것이고, 확실하지 않은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사이비라고 하기 때문에, 글자(사실)대로 읽어야 한다. 최씨의 말은, 공자의 도는 본바탕이 있고, 노자의 도는 본바탕이 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같은 말이라도 한국에서는 어렵게 해야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해석자들은 가급적 어렵고 난해하고, 어처구니없는 말로 글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러나 2장에서, 난이상성, 장단상교로 사이비의 특징을 자세히 보라고 했고, 또 유무상생(실제와 이론으로 생기는 것을 자세히 보라)고 했으니까 ... 여기에서 공자의 도(道)와 노자의 도(道)가 어떤 것인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공자는 주역, 계사전에서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 했다. 形而上이란,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한 관념(觀念)적인 것이며, 형체가 없고 그 존재를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공자의 도(道)는 본바탕이 없고, 작용이나 목적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공자가 비본질주의자이다. 반면, 노자의 도(道)는 유무(有無:실제와 이론)의 상호작용으로 形而下다. 形而下란, 시간이나 공간 속에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을 갖추어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노자의 도(道)는 법칙(法則)을 말하고, 공자의 도(道)는 이상(理想)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노자가, 이론과 실제를 통해서, 이 세상 모든 사물의 본바탕을 파악하려는 본질주의자다. 그렇기 때문에, 유무(有無)가 무엇인지, 충(沖)이 무엇인지 글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도덕경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연혜(淵兮) 사만물지종(似萬物之宗),
(도는)깊구나! 만물(모든 것)의 근원인 것 같다.

연(淵): 못. 깊다. 사(似): ~것 같다. 종(宗): 마루. 어떠한 종류를 가리지 않고, 여러 갈래로 나뉜 어떤 학파나 ‘가장 뛰어난 것’을 말한다. 이치나 방법의 깊이를 말함.

★노자는 자연의 이치를 글자로 남긴 최초의 성인으로, 서양의 철학자들(고대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니체, 근대의 데카르트, 베이컨) 보다 훨씬 앞서있고. 스케일이 더 크다. 또한 찰스 다윈이 찾고자 했던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도덕경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도덕경에 자연을 비추면 자연이 보이고, 과학을 비추면 과학이, 철학을 비추면 철학이 보인다. 하물며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탐구한 프로이트보다 훨씬 앞서 있기 때문에, 도덕경을 이해하면 현대 심리학자(정신분석가)들도 아직 모르고 있는 무의식(마음)의 장소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① 좌기예(挫其銳) 해기분(解其紛),
그 (날카로울 예(銳)를 (꺾을 좌(挫)고, 그 (어지러울 분(紛)을 (풀을 해(解)고, 최씨는 해석이 없음.

☯그래서 뛰어난 그 도(道)의 근원을 가지고 ★라는 것은, ‘잘못된 것을 좌절시키고, 번잡함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요즘 시대로 보면, 구속된 대통령, 대법원장, 국정원장 및 공정위, 재벌가, 고위관료 등 잘못된 것(惡)들이 좌절되니까, 세상이 조금이라도 맑아지는 것 같지 않은가?

★이처럼 도덕경은 현대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 이렇게 잘못된 것들이 좌절되고, 번잡함을 깨닫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이루어졌거나, 광복 후에 바로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친일파나 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리도 끝내지 못했다. 다행히 늦게나마 국민들의 촛불혁명으로부터 질서와 정의(美)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사회 전반에 누적된 잘못된 것(惡)들이 바로 잡혀야 사회가 밝아지는 것처럼, 도덕경 해석에서도 올바르지 않은 것(惡)들이 바로 잡혀서 사기꾼들이 사라져야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그 光(빛)을 和(화할)합하게 하고, 그 塵(티끌)과 同(한 가지)같이 한다.’는 것을, 화광동진(和光同塵)으로 사용했다.

②화기광(和其光) 동기진(同其塵).
자기의 지혜를 자랑함이 없이, 오히려 그 지혜를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 하라,

인간은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갑질 문화를 없애고 공정성 회복과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이 잘못 만들어진 주역의 이론과 엉터리로 해석한 도덕경을 좌절시키고, 번잡함을 깨닫게 하여,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라는 글로 보인다. 내가 지금까지 의심 없이 믿고 있던 도덕경 해석을 뒤엎게 된 것도, 도덕경 해석들이 실제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글자대로 직접 증명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므로 ‘글과 해석’이 동일하면 참(眞)이고, ‘글과 해석’이 서로 다르면 거짓(假)이고, 의미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글과 해석’이 다를 때는, 아무리 달콤하고 멋진 말이라도 믿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일리가 있다고 진리는 아니다.

담혜(湛兮) 사혹존(似或存),
맑구나! 어쩌면 있는 것 같다.

담(湛): 즐길, 빠지다. 

즐기고, 빠지고, 맑다는 것은, 도(道)가 마치 진짜로 있는 사물처럼, 또는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을 보고 있는. 사(似): ~것 같다. ~는 것이다. 이렇게 노자의 글은 현대인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기 때문에, 물이 흐르듯 차곡차곡 전개되고 있는 도덕경 내용에서 삭제하거나 사족을 붙이는 것을 ‘사기’라고 강하게 말하는 것이다.

오부지수지자(吾不知誰之子) 상제지선(象帝之先).
나는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하나, 황제의 그림보다 먼저이다.

吾不知誰之子= 노자도 '도(道)라는 글자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모르겠다.' 는 것이다.

★코끼리 상(象)은 모양, 그림이므로, 象帝=해석자들이 말한 코끼리 신(神)도 아니고 여호와(하느님)도 아니다. 황제는 복희와 문왕이므로 황제의 그림은 복희의 선천(하도)과 문왕(文王)의 낙서(洛書)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헛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도(道)가 상제지선, 즉 황제의 그림보다 먼저, 라고 한 것은 인간은 자연에서 호기심 DNA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황제의 그림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세상과 나의 관계를 알고 싶어 하는 어떤 이치나 방법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 동양학의 문제점은 글자의 의미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象)은 무엇인가? 우리가 집을 지을 때 머리에 그리는 설계도와 같다. 상(象)에는 괘상(卦象)과 수상(數象)이 있다. 괘(卦)를 상(象)으로 나타낸 것이 선천이고, 수(數)를 상(象)으로 나타낸 것이 하도다. 대부분 상(象) 자를 기미(낌새)나 징조의 의미로 보는데, 기미는 형(形:모양)이나 물(物)로부터 나타나고 예측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람을 느낄 수 없는 건물에 있어도 파도치는 형(形)을 보면 바람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고, 반대로 바람의 세기로 물(物)을 느낄 수 있으면 파도의 높이도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상(象)을 관찰하면 형(形)을 이해할 수 있고, 물(物)까지 파악할 수 있으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성격까지 추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에 더하여 변화하는 형체나 어느 시기에 나타나는 감정을 관찰한다면, 한 인간의 삶이나 건강의 원인과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체에서 상(象), 형(形), 물(物)의 이해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수(數)

이렇게 2.500년 전에 노자가 21세기 현대인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혹시 타임머신을 타고 2.50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그래서 노자를 현대과학자, 또는 현대철학자라고 일컫는 것이다.

★ 제4장 전문.

도충(道沖), 이용지혹불영(而用之或不盈).

연혜(淵兮)! 사만물지종(似萬物之宗).

좌기예(挫其銳) 해기분(解其紛), 화기광(和其光), 동기진(同其塵)

담혜(湛兮)! 사혹존(似或存), 오부지수지자(吾不知誰之子), 상제지선(象帝之先). 

○ 도(道)는 심원하지만, 실제로 쓰거나 혹은 채우지 못한다.

○ 깊구나! 만물(萬物)의 근원인 것 같다. (그 도의 근원을 가지고)

○ 잘못된 것을 좌절시키고, 번잡함을 깨닫게 하여, 자기의 지혜를 자랑함이 없이 오히려 그 지혜를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 하라.

○ 맑구나! 어쩌면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하나, 황제의 그림보다 먼저이다.

해석자들은 도(道)는 하느님보다 더 원천적인 것이므로, 요즘의 과학자들도 감히 단언하기 어려운 태초의 상태나, ‘빅뱅’ 이전의 우주 DNA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도덕경에 대한 모든 것들을 왜곡했다.

◆최씨= 도는 텅 비어 있다. 그러나 그 작용은 끝이 없다. 깊기도 하구나! 마치 만물의 근원같다. '좌기예(挫其銳), 해기분(解其紛) 화기광(和其光), 동기진(同其塵)' 조는 아예해석하지 않았음. 신비롭기도 하구나! 마치 진짜로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겠다. 하느님보다도 먼저 있었던 듯하다.

★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쁘고 허무한 것은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사기는 안 당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우리나라는 사기 공화국(천국)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안 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여러 가지 원인이나 상황에 따라 동양학에 각별한 시간을 투자했다면 시간이 너무 허무할뿐더러 또 거기에 따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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