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병원 병원장 김길우(02, 3408~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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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나카노 교코 지음, 이인식 옮김

 분노 - 어쩌지 못해, 어쩔 수 없었던 사람들

 

이번 장에서는 분노를 테마로 한 명화를 몇 점 보겠습니다. 우선 러시아 리얼리즘의 거장 일랴 레핀이 역사 속의 사건을 그린 작품부터 시작하죠.

 

일랴 레핀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세로 2미터, 가로 2.5미터의 대화면에 등신대의 남자가 둘. 관자놀이에서 피를 흘리는 젊은이와 그를 끌어안은 노인입니다. 옅은 분홍색 가운을 입은 젊은이는 이미 의식이 몽롱하여 눈빛이 공허하고, 제 몸을 가누지도 못합니다. 노인은 솟구치는 피를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상처를 누르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는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 없다는 두려움에 얼어붙었습니다.

의자는 넘어져 있고, 구겨진 융단 위에 붉은 쿠션이 뒹굴고 있습니다. 앉아 있던 이반 뇌제가 갑자기 일어서서 들고 있던 지팡이로 아들을 늘씬하게 때린 것입니다. 지팡이에는 핏자국이 보입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 뇌제의 두 눈이 똑똑히 말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잘못에 질려 후회와 절망과 시커먼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뇌제는 지팡이를 휘두르는 순간 스스로도 분노에 휘둘렸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이 그림을 보는 사람도 압니다. 그리고 그 공포를 체험합니다. 강렬한 이 눈을 통해.

짧은 순간이라도 광기에 사로잡히는 것은 무섭습니다. 그 광기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한 짓을 보는 것은 더욱 더 무섭습니다. 앙상한 뇌제의 몸이 옷 밑에서 떨고 있는 것까지 느껴집니다.

 

증오 - 장미의 왕비, 악의가 담긴 초상.  

자크 루이 다비드 '마리 앙투아네트 최후의 초상'

 

이 스케치 그대로였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다비드가 본 앙투아네트, 악의를 담은 눈으로 본 앙투아네트이고, 실제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오늘날에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그림에는 군중 앞에서 모욕당하는 옛 왕비를, 한층 비참하고 초라하게 그려서 멸시하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나는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진 진실도 있습니다.


앙투아네트는 왜 형장의 이슬이 되어야 했을까요. 살아남을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앙투아네트의 처형보다 150년정도 앞서, 영국에서는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국왕 찰스 1세가 참수되었지만, 프랑스에서 시집 온 왕비는 앞서 찰스 1세가 친정으로 돌려보내 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일찍 손을 썼더라면 앙투아네트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루이 16세와 행동을 함께하려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나는 츠바이크의 설명에 찬성합니다. 말인즉, 특별히 내세울 것 없고 뛰어난 점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도, 가혹한 운명 앞에 서게 되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강하게 의식하면서 변모한다는 것입니다. 앙투아네트 역시 대혁명의 폭풍에 휘말려 비로소 자신을 알고, 씩씩하게 숙명을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합스부르크의 공주로서, 또 부르봉 가의 진정한 왕비로서, 죽음을 맞아 세상에 위엄을 보이는 것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이라고 여겼던 것이 아닐까요.

 

제인한방병원 병원장 김길우(02, 3408~2132)

by 유당선생 김길우(혁) 2018.07.27 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