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승닮아 남주자!/정언수 선생님

나만 아는, 노자 도덕경; 7장(21.02.07).

by 김길우(혁) 2021. 1. 16.

도덕경 제7장

6장에서 ‘자연생태계의 동식물들은 자율성을 가지고 생존하고 있다’고 했고, 또 천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치만 보더라도, 도덕경은 신선술, 연단술, 방중술, 장생술 같은 류의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도덕경 해석자들은, .'도는 천지(天地)보다도 앞선다. 도는 만물을 생성(生成)하는 근원적 존재이다. 천지간의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이를 성립시키는 이법(理法)이다. 대자연을 꾸려나가고 지탱해주는 것이 도(道)다.' 라고 말한다. 어떤 근거로 이런 헛소리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까지의 도덕경 해석들은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쓰레기들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도덕경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약간 맛이 간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일반상식을 가지고→

천장지구(天長地久),
하늘과 땅은 길고 오래간다.

하늘과 땅은 동시(同時)에 생겼다. 天地長久라 하지 않고 天長地久라 한 것은, 父母生育을 父生母育이라고 하는 것처럼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낳고 어머니가 기르는 것이, 동양사상이라고 하면 안 된다. 이렇게 노자가 말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신의 얄팍한 지식으로 글자를 왜곡하면, 썩은 지식이 된다. 우리는 흔히 지식정신에 영향을 주고, 음식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식이건 음식이건 썩은 것은 정신을 모두 피폐하게 한다. 왜냐면 정신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지소이능장차구자(天地所以能長且久者) 이기부자생(以其不自生),
천지(天地)가 길고 또 오래갈 수 있는 까닭은, 그것(하늘과 땅)이 저절로 생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所以=까닭. 自生=저절로 나서 자람.

◆김씨= 하늘과 땅이 너르고 또 오래갈 수 있는 것은, 자기를 고집하여 살고있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스스로 살려고 하지마라?

◆ 최씨= 천지가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그 자신을 살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런 것이 철학이라면 소가 웃을 일이다. 죽고 사는 문제, 즉 死卽生, 生卽死= 사람에게 해당되지, 천지(자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이 저절로 생기지 못한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이 서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늘은 땅이 있어야 하고, 땅은 하늘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상대성을 말한다.

★상대성= 사물이 그 자체로 독립해서 존재하지 못하고, 서로 의존적인 관계를 가지는 성질이다, ②동물도 수컷과 암컷이 공존해야만 상속되는 것처럼, 아내는 남편이 있어야 하고, 남편은 아내가 있어야 ‘부부’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식물도 뿌리와 잎이 서로 도와서 광합성(작용)을 하고, 인간도 몸과 정신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살아간다.

★이렇게 도덕경에서는 만물의 법도를 설명하고 있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보다 쉽기 때문에, 실생활에 도움이 된다.

☯노자가 말하는 상호작용은 선천팔괘에 있고, 선천에 있는 천지의 근본으로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 이 선천 팔괘에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들이 개별적으로 설명이 되어 있고, 또 모든 사물들이 공존하는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노자는 상호작용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마리아가 남자 없이 예수를 낳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음양도 선천 팔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음양을 모순과 대립으로 보고, 양(陽)은 좋고 음(陰)은 나쁘다는 흑백의 논리와 이편이 아니면 저편이라는 이분법적인 개념을 갖게 되면서, 결국 나한테 잘하면 좋은 사람이고, 나한테 잘못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이기적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날씨가 맑으면 ‘좋은 날씨’라고 하고, 날씨가 궂으면 ‘나쁜 날씨’라고 무심코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계속 날씨가 맑으면 사막이 되고, 계속 날씨가 궂으면 지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맑기도 하고, 비도 오고, 바람도 불면서 자연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고능장생(故能長生)
그러므로 오래도록 살 수 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노자는 지금까지 현대 과학(철학)에서도 밝히지 못한, 자연의 이치(인간의 운명)를 2.500년 전에, 세상에 알린 최초의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경을 이해하면 자연의 이치인간의 운명을 알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도덕경이 필요한 것이다.

시이성인(是以聖人) 후기신이신선(後其身而身先),
그래서 성인은, 그 몸을 뒤에 두어도 자신이 앞서고,
외기신이신존(外其身而身存),
그 몸을 밖에 두어도 자신이 존재한다.
부부= 미래형(될 것). 현재(됐다). 과거(였다)

이 글에서 해석자들은 ‘뒤로 물러서면 자신이 앞선다’고 말하는데, 이치를 알아야지 무조건 물러서면 안 된다.

★이것은 주나라를 세울 때 문왕은 전쟁에 나서지 않고, 무왕이 싸워서 승리했지만, 문왕이 알고 있는 선천과 하도에 자연의 이치가 있었기 때문에 황제가 되었다.

해석한 내용은 비슷한 것 같지만, 가치관과 기준은 크게 다르다.

★노자는 '나는 상대가 있어야 존재하고, 상대는 내가 있어야 존재한다'는 상호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노자의 이런 객관적인 사상은 자연의 이치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선천과 하도의 이치를 따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선천과 하도에는 나라를 정복하고 운영하는 도(道:이치)도 있지만, 자연에서도 뒤로 물러서면 이익이 되는 원리와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선천과 하도’를 알아야 가능한데, 지금까지 선천과 하도에 대한 이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반복)는 것은, 동양의 기초를 모른다는 것이고, 동양의 기초를 모른다는 것은, 도덕경뿐만 아니라, 동양의 모든 것을 제대로 해석할 사람이 없다는 말과 같다. ★앞에 도(道)?

비이기무사사(非以其無私邪) 고능성기사(故能成其私),
그것은 無(섭리)가 사사롭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김씨=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오히려, 그 사사로움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없으면, ?을 이룬다?

◆최씨= 그것은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능히 그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 라면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 오히려 '엄청난 현실적 보상'이 있다고?

★ 썩은 동양철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걸 철학이라고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서야 되겠는가? 글을 해석할 때는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① 노자는 유토피아 같은 이상향을 꿈꾸거나, 신선이 되려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이나 의욕을 버려야,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처신하라는 말도 아니다.

② 또 5장에서 성인불인(聖人不仁)하다고 했다, 노자는 예수나 석가의 모습도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거나 양보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욕심이나 이기심을 철저하게 무시하라? 사사로움을 버리라? 는 것도 아니다.

③또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이상적인 통치자나 지도자가 아니고, 자연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다. 그래서 성인은 자연의 변화(원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간의 운명(결과)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노자를 ‘자연 중심주의자’라고 하는데, 노자나 공자나 철저한 ‘인간중심주의자’이다. 다만 공자는 점술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파악하려고 했고, 노자는 과학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파악하려고 했다.

★이렇게 노자가 도덕경에서 자연을 논하는 것은, 자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고, 또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에서 존재의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道)를 통해서 자연의 변화와 이치를 말하고, 덕(德)을 통해서 인간의 질서와 정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연과 인간의 생존 방식은 다르지만, ‘생명체가 아닌 것에서는 생명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 노자의 기본 사상이므로,지구가 살아있지 않으면, 인간도 살 수 없다’고 하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경은 헛소리로 어설프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7장 전문.

하늘과 땅은 길고 오래간다.

하늘과 땅이 길고 또 오래갈 수 있는 까닭은, 그것(하늘과 땅)이 저절로 생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래도록 살 수 있다.

그래서 성인은, 그 몸을 뒤에 두어도 자신이 앞서고, 그 몸을 밖에 두어도 자신이 존재한다.

그것은 無(섭리)가 사사롭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도(道)는 이치나 방법을 말한다. 도덕경의 가치는 글자가 결정할 수밖에 없다. 동양은 2.500년 동안 진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여부는 글자가 증명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교합(交合)하여 만물이 생겨나고, 음양의 기가 교집(交集)하여 변화가 일어난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가리키는 사물을 보라.

댓글